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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가면 - 박인환

아트리(喆) 2009. 2. 16. 09:18

 

세월이 가면

                    박 인 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시구연구

♣ 그 눈동자 입술 : 정열적인 사랑

♣ 내 가슴에 있네 : 기억으로 남아 있음. (화자의 슬픈 모습)

♣ 바람이 불고 : 시대적 불안감의 표현

♣ 비가 올 때 : 험난한 현실

♣ 가로등 그 그늘의 밤 : 도시적 감수성의 추억

♣ 호숫가, 공원, 벤취 : 추억이 깃들어 있는 공간

♣ 나뭇잎은 ~ 흙이 되고 : 세월의 흐름(허무함)

♣ 나뭇잎에 덮여서 : 사라지고 잊혀져서

♣ 서늘한 내 가슴 : 추억의 아픔

 

 


핵심정리

* 성격: 도시적, 감상적, 회고적, 감각적, 애상적, 상징적 

* 특징: 도시적 감상주의와 보헤미안적 기질, 허무주의

* 표현: 이미지에 의존하기보다는 직설적인 내면 정서 표출

* 구성

가슴에 남은 그대(상실의 슬픔)--1연

잊지 못할 추억(옛날의 추억)--2연

세월의 흐름(삶의 허무함)--3연

외로움 속에 남은 그대(상실의 슬픔)--4연

* 주제: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슬픔, 사랑의 추억과 회상

* 정서: 상실한 것들을 가슴에 남겨 두는 그리움의 애상감

 

 

해제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를 통하여 시인의 체험의 실체를 보여 주는 대신 '그 사람'이 떠나 버린 상실의 아픔과 슬픈 자아의 모습이 전면에 나타남으로써 애상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띠고 있는 작품이다.

 

 

감상포인트

▶ 내용 : 명동 어느 술집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읊었고,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는 에피소드가 함께 노래로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는 전쟁을 통해서 맛본 비운과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헤미안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인의 찢긴 삶의 모습이 도시적 이미지를 통해 간결하게 드러나고 있다.

▶ 이 시에 반영된 경향 : 전후(戰後) 우리 문학의 허무주의 경향(전후의 고독과 우울, 방황의 흔적들이 감상적인 서정으로 드러나 있다

▶ '나뭇잎'의 상징적 의미 : 지난날의 사랑을 덮는 세월의 흐름, 그 사랑의 과거를 하나씩 덮으며 겹겹이 쌓여 가는 사랑의 아픈 추억

▶ 이 시의 화자 역시 아름다웠던 시절에 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통해 어두운 시대가 안겨 준 상실의 슬픔과 고뇌를 밟으면서 방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인환(朴寅煥, 1926.8.15-1956.3.20)

강원 인제(麟蹄) 출생. 경성제일고보를 거쳐 평양의전(平壤醫專) 중퇴. 종로에서 마리서사(書肆)라는 서점을 경영하면서 많은 시인들과 알게 되어 1946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거리》 《남풍(南風)》 《지하실(地下室)》 등을 발표하는 한편 《아메리카 영화시론(試論)》을 비롯한 많은 영화평을 썼고 1949년에 김경린(金璟麟) ·김수영(金洙暎) 등과 함께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면서 모더니즘의 대열에 끼었다. 1955년 《박인환선시집(朴寅煥選詩集)》을 간행했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번역하여 시공관에서 신협(新協)에 의해 공연되기도 했다. 《세월이 가면》 《목마(木馬)와 숙녀》 등은 널리 애송되는 시이다. 주요작품으로는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 <밤의 노래>, <의혹의 기>, <행복>, <어린 딸에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 등이 있다.

 

 

참고

50년대 모더니즘과 <후반기> 동인의 문학사적 의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이 간행된 것은 1949년이고, <후반기> 동인이 결성된 것은 전쟁 중인 1951년 부산에서였다. 후자의 동인은 전자의 시인들 중 박인환, 김경림에 의해 주도되고 김규동, 김차영, 이봉래, 조향 등이 참여하였다. 이 <후반기> 동인의 의미에 대해 김흥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후반기> 동인들은 당시 한국 시단의 주류였던 청록파 및 서정주 등에 대한 반발과 함께 그들의 길을 찾았다. 그리하여 도시적 감수성, 현대의식, 전위적 기법의 추구 등 다양한 노력을 통해 그들은 50년대 혼란스런 면모를 노래하면서 새로운 시의 가능성을 탐색했다. 그들에게는 뚜렷한 이념적 핵심이나 체계가 없었다. 그러한 것이 없었다는 것이 한때나마 그들을 묶을 수 있었던 공통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론의 전개 과정에서 그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50년대의 문학적 사회적 기후 속에 시와 삶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려는 참담한 노력을 이들이 개시했기 때문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별로 확실한 시론을 세우지는 못했지만 시에 대한 당시의 통념에 회의를 던짐으로써 50년대의 성과를 예비하는 값진 계기를 마련하였다.

출처: http://www.hongkgb.x-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