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변 영 로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졸음 잔뜩 실은 듯한 젖빛 구름만이
무척이나 가쁜 듯이, 한없이 게으르게
푸른 하늘 위를 거닌다.
아, 잃은 것 없이 서운한 나의 마음!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아렴풋이 나는 지난날의 회상같이
떨리는 뵈지 않는 꽃의 입김만이
그의 향기로운 자랑 앞에 자지러지노라!
아, 찔림 없이 아픈 나의 가슴!
나즉하고 그윽하게 부르는 소리 있어
나아가 보니, 아, 나아가 보니
이제는 젖빛 구름도 꽃의 입김도 자취 없고
다만 비둘기 발목만 붉히는 은실 같은 봄비만이
소리도 없이 근심같이 나리누나!
아, 안 올 사람 기다리는 나의 마음!
- <신생활>(1922) -
변영로 (卞榮魯 1898.5.9∼1961.3.14) 시인·영문학자. 호는 수주(樹州). 서울 출생. 1909년 중앙학교(中央學校)에 입학하였으나 자퇴하고, 1915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에 입학하여 3년 과정을 6개월 만에 마쳤다. 1919년 독립선언서를 영문으로 번역하였으며 1921년 페허, 1921년 장미촌 동인으로 참가하였다. 1918년 중앙고보 영어교사가 되었고, 1931년 미국으로 건너가 캘리포니아주 산호세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뒤 1935년 동아일보사에 들어가 1946년 신가정잡지 주간을 지냈다. 성균관대학교 영문학 교수, 1953년 대한공론사 이사장에 취임, 1955년 제27차 빈국제펜클럽대회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시작활동은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작하였고, 영미문학의 소개 및 국내 작품의 영역도 하였다.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지은 책에 시집 조선의 마음(1924) 수주시문선((樹州詩文選)1959) 차라리 달없는 밤이 드면(1983) 논개(1987) 등이 있고, 수필집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 1953) 수주수상록(1954), 영문시집 진달래동산(Grove of Azalea, 194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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